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알 아문센 vs 로버트 스콧 (문단 편집) === 목숨을 건 오기 === 여기까지 글을 다 읽은 사람이면 스콧이 그 악상황과 오판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남극점까지 도착이라도 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어떤 탐험이라도 탐험의 성공과 실패보다 '목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든 탐험사에 있어서 [[상식]]이다. 실패했지만 탐험대는 전원 생존한 [[어니스트 섀클턴]]의 사례도 있고, [[프리드쇼프 난센]]도 그랬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망망대해에서 반란이라도 발생하면 모든 게 끝이었기에 날마다 거짓말로 선원들을 안심시켜 가며 [[아메리카]]에 도착한 사례도 있고 똥고집을 부린 건 스콧과 같지만 적어도 콜럼버스는 물자가 부족해서 굶어죽지는 않았다. 바다 위인 만큼 물자가 떨어지면 [[낚시|물자를 구할 수단도 있다.]] 식량 부족이나 체력 한계, 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기로 결심했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던' 탐험가는 사실 무수히 많았지만 결코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기 때문에 포기하였다. 이는 일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등산]]의 경우 물량이나 체력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등산을 늦게 시작해서 거의 저녁 무렵이 돼서야 산 정상에 도착하는 등산객이 꽤 있다. 하지만 겨울 산행은 빠르면 4-5시부터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하고 여름 산행도 저녁 7시부터는 해가 지기 시작한다. 상식적으로 저녁이 되기 전에 하산을 마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 시간대가 지나서 산행을 진행한다면 설령 정상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조난]]당할 위험이 매우 높다. 애당초 정상에 도달할 확률도 매우 낮다. 그리고 조난당하게 되면, 최악은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이다. 다시 말해, 스콧이 여러 오판에도 불구하고 남극점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구려-수 전쟁#s-11|스콧이 거기까지 간 것 자체]]가 바로 탐험대의 생명을 앗아가버린 가장 중대한 '오판'이었다.''' 심지어 산악은 일반 평지와는 달리, 지형의 고저차 및 식생으로 인한 태양광 차단까지 더해져 심각할 정도로 기온이 낮고, 기온차 및 기후 변화가 심해서 조금이라도 추위에 노출되면 바로 [[저체온증]]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산악 등반으로 인해 몸에 땀으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라면, 저체온증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저체온증의 위험성을 더욱 크게 높인다. 저체온증이 심각해지면 [[심장마비]]로 이어지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불과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스콧 탐험대의 상태는 상식적인 상황이었으면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사망에 이르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스콧은 이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일반인들이 가볍게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할 때도 '무리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으로 여기고, 운동선수만큼 쥐어짜듯 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충분히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전제가 있다. 생명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콧은 탐험 과정에서 이 원칙을 망각했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어설픈 준비에도 불구하고 남극점에 도달했고, 그 대가는 탐험대 전원의 사망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치러야 했다. 따지고 보면 스콧 탐험대가 겪은 어려움을 먼저 겪은 게 바로 섀클턴의 탐험대다. 조랑말과 스노모빌을 썼다가 낭패를 본 것도 그렇고, 인간의 힘으로 썰매를 끌며 비어드모어 빙하를 넘어야 했던 것도 그렇다. 심지어 스콧 탐험대의 코스까지도 섀클턴이 먼저 간 길을 따라간 것이었다. 이 정도면 섀클턴 탐험대에도 희생자가 다수 나와야 마땅했다. 하지만 섀클턴은 대원을 단 한 명도 잃지 않았다. 남극점까지 156㎞를 남겨둔 시점, 돌아갈 길을 포기한다면 인류 최초의 남극점 정복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식량 부족 때문에 더 이상 전진하면 살아서 집에 못 돌아간다'고 순순히 인정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던 것이다. 이후 섀클턴은 이 부분을 회상하며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죽은 [[사자]]보다는 산 [[당나귀]]가 낫다.''' 섀클턴 역시 아문센과 마찬가지로 물러설 때를 알았던 것이고, 그 결정이 섀클턴과 대원들을 살렸다. 사자처럼 용감하게 나가다가 죽느니, [[당나귀]]처럼 바보 취급을 받을지언정 살아서 돌아가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 돌아가던 중에도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하기는 했지만, 전원이 살아서 귀환한 것이다. 극도로 위험한 극지 탐험, 그것도 아직 '''아무도 탐험한 적이 없는''' 남극 탐험을 시도했다가 '''전원이 무사히 돌아온다'''는 것은 탐험의 성공 여부 이전에 '''그 자체로 굉장한 업적'''이었기에 섀클턴은 남극점 정복에 실패했음에도 칭송받았다. 아문센의 남극점 도달 이전에는 남극점을 정복한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남극이 극한지역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런 극지에서는 '생존' 그 자체만으로도 명성을 얻을 만하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착하지도 못했을 것이니, 특정 지역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말이다. 이런 판이니 사실 몇명 쯤 죽어도 안 이상한게 가본 적 없는 극지 탐험이고, 살아돌아온다는 보장도 사실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한 명 없이 전원 귀환한데다, 남극점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지 당시로는 가장 남극점에 접근한 탐험대였으며 여러가지 과학적 성과를 올렸으니 실패를 했다 한들 칭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영광은 스콧의 열폭에 한몫해서 결국 스콧이 남극점으로 떠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한 이후 섀클턴은 [[제국 남극 횡단 탐험대]]를 이끌었는데, 이때 그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서 개썰매, 패미컨, 육분의 등 아문센이 유용하게 쓴 장비들을 도입했다. 불운하게도 웨들해 한가운데서 얼어붙은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대원 27명과 함께 조난당하지만, 스콧과 반대로 '''이번에도''' 탐험대원 전원을 생환시킴으로써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심지어 이 탐험대원 중에는 원래 계획에서는 고려하지도 않은 밀항자 한 명까지 있었는데, 섀클턴은 이 사람까지 포함해서 전원을 살려서 돌아왔다. 비록 밀항자는 동상에 한쪽 발가락을 모두 포기해야 했지만, 마지막까지 섀클턴과 동행하며 활약했다. 어떻게 보면 스콧은 공연한 열폭으로 자신과 부하 일동의 목숨을 팔아 자신의 남극점 도착 명성을 샀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스콧보다 먼저 남극점 정복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섀클턴은 '이대로 가다간 우린 다 죽는다'고 판단하자, 깔끔하게 돌아가면서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은 것으로 명성을 얻었고 그 뒤에도 다른 업적으로 실패를 극복하고 명성을 계속 쌓아나갔다. 설령 남극점 정복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더라도, 스콧은 이후에 다른 명성을 쌓을 기회를 포기한 것과 같다. 애초에 스콧 자체가 제대로 된 탐험대장으로는 실격인 인물인지라 이거 아니면 딱히 명성을 쌓을 길이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섀클턴에 대한 태도를 보면 본인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다. 더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무리 아문센에게 패배했더라도, 스콧이 '인류 최초'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고, 도박수나 무리 없이 나아갔더라면 그 역시 남극 탐험가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인으로선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전무후무한 탐험가로 명성을 올리는 업적을 쌓았을 것이다. 더욱이 스콧이 아문센보다 과학 탐사에 더 적합한 멤버를 이끌고 갔다는 것을 고려하면,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문센과는 달리 '''최초로 남극에 대한 자세한 과학적 조사를 행한''' 사람으로는 대접할 수 있을테니 결국에는 단순히 남극점에 도달만 한 아문센과 대등하거나 심지어 아문센을 뛰어넘는 명성을 얻었을 수도 있다. 탐사 면에서는 몰라도 과학적인 조사 면에서만은 아문센보다는 확실히 우위였으니 말이다. 스콧이 향후 아문센은 물론이고 섀클턴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결국 생존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제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탐험을 강행한 판단 착오로 인해 그나마 이룩한 것마저 저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초창기에는 찬사를 받았던 스콧이 [[낭만주의]]보다는 [[합리주의]]가 자리잡은 21세기에 들어서는 결국 무책임한 리더의 대명사라는 불명예까지 뒤집어쓰고 만 것이다. 탐험대의 대장은 대원들의 목숨에 책임이 있는 [[리더]]다. 1956년 영국 지질학자인 레이먼드 프리슬리(1886~1974)는 늘그막에 세 사람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아문센, 섀클턴, 로버트 스콧 세 사람을 모두 만나보고 같이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 사람은 각자 특징이 있더군요. 우선 스콧은 과학탐사대를 이끌 대장으로서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겁니다. 다음으로 아문센은 빠른 움직임과 꼼꼼한 준비로 전문적인 속전속결 탐험대장으로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죠. 하지만 [[제국 남극 횡단 탐험대#s-3|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무릎을 꿇고 섀클턴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